스핑크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로 일컬어지는 그리스인들의 지배시기에 붙여진 이름이다.(기원전 332~기원전30년)
고대에는 '루키'라하여 '서쪽에 빛나는 것' 이란 의미였고, 신왕국 때에는 '세셉앙크'라 하여 '생명을 준다'는 의미였다.
그리스 시대 '스핑크스'라 부르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에서 유래한다.
"아침에는 네발, 낮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하였고 못맞추면 잡아먹는 공포의 스핑크스였는데, 어느날 오디푸스가 이를 맞춤으로서 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이름은 '아부 훌'로서 '공포의 아버지란 의미이다.
이집트에는 수많은 스핑크스가 존재하는데, 대부분 신전을 지키는 수호의 역활과 성스런 길의 좌우에 한쌍으로 만들어진다.
때로는 파라오가 자신의 모습을 스핑크스로(힉소스, 합셉슈트, 람세스 등) 하였고, 스핑크스의 보호를 받는 모습(카르낙신전 입구의 스핑크스)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기자의 피라미드 앞에 있는 스핑크스는 그 의미가 다르다.
만들어진 시기를 두고 지질학자는 1만전 전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2800년 경으로 추정한다.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를 섬기는 신관들은 40여 km떨어진 멤피스의 '프타'신을 섬기는 지역과 대립하였고, 이에 경계지역이되는 기자에 거대한 석회암 언덕을 이용하여 조각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기자의 스핑크스는 수호의 목적이 아니라, 단독의 신전을 가지고 있는 '루키'(스핑크스)였다.
몸은 사자의 모습으로 용맹을 나타내고, 머리는 파라오의 모습으로 지혜를 나타낸다.
몸길이 72m, 높이 20m, 머리길이만도 4m이다. 얼굴의 코는 아랍의 지배시기인 맘루크왕조(AD1250년경)의 병사들이 대포사격연습으로 파괴되었고, 턱수염은 영국이 떼어가 대영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스핑크스는 주변을 석회암을 깍아 만듬으로서 늘 모래속에 잠기게 된다. 매년 불어오는 모랫바람은 수년만 그대로 두면 목까지 모래에 묻히게 된다.
어느날 왕자는 사냥을 나와 스핑크스의 머리 그늘 아래서 깜빡 잠이든다.
꿈 속에 스핑크스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내가 모랫속에 갖혀있어서 갑갑해서 못견디겠다. 네가 나를 꺼내주면 너는 후에 파라오가 될것이다." 이리하여 왕자는 스핑크스 주변을 모래를 제거하여 모습을 드러내게 하였고, 후에 자신의 형이 죽음으로서 그는 파라오가 된다.
이 전설은 스핑크스의 다리사이에 화강암 석비로 존재한다. 일명 '투트모스4세의 꿈의 비문'으로 일컬어진다.
기원전 1450년경 아멘호텝의 아들이었다. 기원전 1446년을 출애굽의 시기로 보면 10번째 장자의 죽음과 관련이 있게 된다.
스핑크스는 투트모스4세의해 기원전 1450년경 모습을 드러내었고, 이후 람세스2세의 아들 케무아세트에 의해 기원전 1250년경 모습을 드러내지만 다시 모래에 묻혀있었다.
프톨레 마이오스 시대에서 로마시대에 거쳐 모습을 드러내었고 다시 모래에 잠겨있던것을 프랑스 고고학자 가스통 마스페로에 의해 1886년경 모습을 드러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몸부분의 블럭 모양은 복원한 것으로 원래는 하나의 통돌이었다.
기자의 스핑크스, 다리사이로 투트모스4세의 꿈의 비석이 보인다.
기자 스핑크스의 옆모습, 찍는 각도에 따라 피라미드를 등에 지고 있는 듯 하다. 블럭으로 된것은 복원모습이다.
멤피스의 스핑크스, 람세스2세의 것으로 추정하며 석화석고로 만들어 졋다.(기원전 1280텬경 )
카르낙 신전 앞의 스핑크스, 양머리(마몬신을 상징) 스핑크스로서 두줄로 이어져 있다.
카르낙 스핑크스, 아몬의 상징 양머리 스핑크스의 머리아래에는 람세스2세가 신의 보호를 받고있는 모습이다.
카이로 박물관 뜰어 스핑크스. 람세스2세의 이름이 부조로 남아있다.
출처
원문링크 : 스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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